Collecting Editions : PART 1.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MAGAZINE9 2023. 3
Art-Market 임예성
지난 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개최된 아트페어에서 VIP 관람객의 실수로 4만 2천달러(약 5460만원)짜리 제프쿤스의 풍선개(Balloon Dog) 조각 작품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와장창 깨져버린 작품의 영상과 사진이 인터넷을 떠돌았지만 파손된 작품의 조각이라도 구매하겠다는 컬렉터가 등장하는 등 미술계의 기이한 가치평가 풍습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해당 작품은 799개 한정 수량으로 제작된 에디션 작품이다. 이번 사고로 인해 에디션 작품 수가 798개로 줄어들며 오히려 높아진 희소성에 컬렉터들에겐 희소식이라는 갤러리 관계자의 설명이다. 에디션 작품은 예술계의 신데렐라였다. 유일무이 우아한 혈통을 자랑하는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오리지널 원화와 비교 당하며 대량생산을 위한 저렴한 작품들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작가의 자필 서명과 에디션 넘버가 포함되기 시작하며 프리미엄을 부여 받기 시작하는데,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에디션이 미술사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왔으며, 에디션 판화 작품을 컬렉팅 하기 위하여 알아두면 좋을 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Coca-Cola Girl 6 에디션 작품에 서명 중인 알렉스 카츠, Image Credit ARC Fine Art LLC.
에디션(Edition), 작가의 사인을 찾아라!
판화(Prints) 작품은 미술 시장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술가들은 판화를 통해 대중에게 보다 쉽게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하고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판화 작품은 원작에 비해 저렴하게 생산되어 대중에게 널리 유통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인식을 높이는 데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맨하탄 소재 사모펀드 투자자인 스튜어트 그로스(Stewart Gross)는 “판화는 더 저렴한 가격으로 멋진 예술가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단순히 판화가 원화의 대용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판화에서 ‘에디션(Edition)’이라는 용어는 작가에 의해 직접 제작된 원본 판을 복수 인쇄한 인쇄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프린트된 인쇄물에 한정 짓지 않고 조각, 사진 및 비디오와 같은 다른 매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피카소는 자신의 에디션 판화 작품에 서명을 하며 “판화는 수표와 같다. 사인을 해야 비로소 통용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만큼 서명의 유무가 중요하다는 것!
Artist proof number, Image Credit Christies.
이처럼 에디션은 일반적으로 작가가 서명하고 번호를 매기며 제작 날짜를 기입하는데, 이 판화 작품들은 예술적 가치와 독점성으로 인해 높은 수요를 얻게 되었다. 만약 50개의 한정판 에디션이라하면 1/50, 2/50 등으로 번호가 매겨지며 아티스트를 위해 제작된 것은 A.P(작가증명, Artist Proof)로 표시한다. 물론 작품 수량을 한정 짓지 않고 오픈 에디션으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으나 한정판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희소성 싸움이다. 원화가 단 하나의 오리지널이기에 그 가치를 가지는 만큼 에디션 또한 한정판으로 제작된 것이 더 희귀하며 수집 가치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 시장 속 에디션 판화의 진화
에디션 판화 시장은 그 자체로 매혹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다. 미술 시장에서 판화의 역사는 피카소, 마티스와 같은 예술가들이 에칭 및 석판 인쇄와 같은 전통적인 판화 기술을 사용하여 한정판 판화를 생산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Under the Wave off Kanagawa (Kanagawa oki nami ura), also known as The Great Wave, from the series Thirty-Six Views of Mount Fuji, Katsushika Hokusai, Image Credit Clarence Buckingham Collection.
19세기에는 인쇄 기술의 발달로 인해 판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판화 기술이 확산되고 판화 수요가 증가했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한창이었던 미술공예운동의 주요 작가인 윌리엄 모리스와 알퐁스 무차와 같은 작가들은 장식적이면서 기능적인 직접 손으로 인쇄한 포스터 판화를 만들고 있었다. 이는 판화가 예술 형태로 대중화 되는데 도움을 주었고 당시 그러한 작품들은 대중들에게도 큰 인기가 있었다. 이 시기에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운동 중 하나는 일본의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일상 생활과 풍경을 목판화로 제작한 일본 우키요에 운동이다. 우키요에((浮世絵)는 ‘덧없는 현세의 그림’이라는 뜻으로 가장 일본을 상징하는 표현기법으로 인상파 탄생에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며 고흐, 마네, 드가 등 거장들에게 큰 영감의 원천이 되어 미술사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우키요에 판화는 화려한 색채로 입체감 표현 없이 선묘와 여백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대 주목할만한 작가로는 우타가와 히로시게(Hiroshige), 가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가 있다.
20세기로 접어들며 미술 매체로서 판화의 인기가 상승하고 많은 예술가들이 한정판 판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피카소, 마티스와 더불어 팝 아트와 같은 현대 미술 사조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앤디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의 예술가들이 실크 스크린, 에칭, 석판 인쇄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면서 판화 제작이 크게 확장되었다. 앤디워홀의 실크 스크린 작품들은 한정판 판화의 부상을 가속화하며 가벼운 대중 예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장르로 자리잡고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뽑힌다. 워홀은 시대의 아이콘인 마릴린 먼로, 재클린 케네디,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주로 광고 전단을 제작하는 인쇄기법인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해내어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 5월 크리스티 뉴욕의 경매에서 워홀의 (1964) 작품이 1억 9,500만 달러(약 2470억원)에 팔리며 20세기 가장 비싼 작품으로 신기록을 세우며 성공한 작가로서의 굳은 입지를 자랑하고 있다. 해당 작품은 린넨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된 판화였다. 재미있는 점은 이 작품을 어떤 매체에서는 판화로 표현하기도 하고, 다른 매체에서는 오리지널 실크스크린 작품으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핵심은 판화가 더 이상 원화 작품과 비교 대상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그 의미의 확장을 거듭해 나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Andy Warhol, Shot Sage Blue Marilyn, 1964, Image Credit Christie's
오늘날 한정판 판화 시장은 더욱 활기차고 다양하며 많은 동시대 현대 예술가들이 계속해서 매체를 탐구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디지털 인쇄 기술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하여 전통적인 판화와 다른 형태의 예술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하는 등 한정판 작품 시장은 계속 진화하고 확장되어 수집가들에게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제공하고 있다. 제프 쿤스(Jeff Koons),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무라카미 타카시(Murakami Takashi),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와 같은 작가들 또한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에 걸쳐 매우 영향력 있는 작가들로 원화 작품 시장뿐 만 아니라 에디션 시장에서도 큰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제프 쿤스는 키치한 대중 문화 이미지를 스테인리스 스틸과 같은 대량 생산 매체를 사용하여 단순히 작품을 여러 개 제작하는 것을 넘어 전통 예술에 도전하고 새로운 컬렉터 세대에게 매력을 이끌어냈다. 그의 에디션 작품은 경매에서 기록적인 가격에 팔리기도 하며 상업적이라는 냉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수집하고자 하는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이번 마이애미 페어 사건에서 깨진 파편을 구매하겠다는 수집가가 있었다는 점만 보아도 단번에 이해가 된다. 쿠사마 야요이 또한 생동감 넘치는 설치 작업과 에디션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국내 경매시장에서 낙찰총액 과 최고가를 동시에 석권하며 쿠사마 천하로 시작하여 쿠사마 천하로 끝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Installation view of IFPDA Print Fair, 2022. Photo by Rich Lee. Courtesy of IFPDA.
트렌드 한 눈에 보기
동시대 미술의 트렌드를 단번에 보여주는 바로미터 아트바젤, 그렇다면 에디션 판화 작품을 한 곳에 둘러볼 수 있는 페어도 있을까? 컬렉터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세계 최대 규모 에디션 전문 아트페어 IFPDA. 전 세계 17개국 150명 이상의 회원을 자랑하는 국제 파인 프린트 딜러 협회(IFPDA, International Fine Print Dealers Association)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에디션 발행뿐 만 아니라 커뮤니티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하여 에디션 수집에 대한 지식을 육성하고 촉진하는 기관이다. 협회는 매년 뉴욕시에서 프린트 페어를 개최하는데 판화 예술 매체에 전념하는 가장 규모 있는 박람회이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전망으로 메가급 갤러리도 판화에 집중하는 추세이다. 하우저 앤 워스(Hauser&Wirth)는 2018년 처음으로 IFPDA페어에 참가하였다. 세계 톱3 갤러리 중 하나인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는 인쇄 전문 출판 사업부인 유토비아 에디션(Utopia Editions)를 2021년 설립한 이후 처음으로 작년 페어에 데뷔하였다. 즈워너 갤러리에서 선보인 판화 작품으로는 마르셀 드자마(Marcel Dzama), 로즈 와일리(Rose Wylie) 등 모두 3천 달러(약 350만원) 미만의 작품이었다. 프리즈 아트페어가 열리는 주간을 프리즈 위크라고 부르듯 10월 뉴욕은 “프린트 주간(Print Week)”으로 불리며 원화와 판화의 경계를 흐트려 놓았다.
판화 분야는 미술 시장 전체 세그먼트에서 작지만 탄탄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판화는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도 ‘Prints & Multiples’라는 독립된 부서 아래 경매를 진행한다. 미술시장 전문 분석기관인 아트택틱의 (2023.02) 보고서에 따르면, 한정판 판화 시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판매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2년 판매 수치는 21년 대비 29.3%, 20년 대비 66.2% 증가하며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 동안 9,550만 달러의 기록을 세웠다. 강한 잠재력을 가진 판화 시장의 전반적인 트렌드와 이를 이끌어가는 작가들에 대해 다음 호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