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ze seoul 2022 : 서울에는 특별한 풍미가 있다
MAGAZINE9 2022. 9
Art-Market 임예성
지난 14일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에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가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었다. 이로서 ‘오징어 게임’은 아시아와 비영어권에서 최초의 6관왕을 수상한 자랑스러운 K-콘텐츠가 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팬덤을 자랑하는 BTS(방탄소년단)은 빌보드 1위를 넘어 빌보드 뮤직 어워즈 3관왕을 차지하기까지 한다. 전 세계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지고 온 코리아 센세이션. 이번엔 미술 시장이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Frieze)가 드디어 서울에 상륙했다. 우량 갤러리들이 떼로 몰려와 서울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지 혹독한 시험대에 올랐다. 과연 그 결과는 어땠을까. 프리즈는 2003년 영국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며 다른 페어와 차별화 전략을 모색해왔다. YBAs(Young British Artists)출신 데미안 허스트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도약대를 제공한 꽤 의미 있는 아트페어다. 이러한 프리즈가 어마 어마 한 출품작을 한 가득 채워 서울을 직접 찾아왔다니. 그 자체로 흥분되는 일이다.
지난 2일 코엑스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작년 650억원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저력을 보여준 키아프(KIAF •한국국제아트페어)와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가 동시 개최하며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까지 시대를 초월한 작품들로 곳곳을 채웠다. 우량 갤러리들은 제대로 한껏 팔아보자며 단단히 준비해온 티가 역력하다. 동시대 미술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조지 콘도(Gorge Condo),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 우르스 피셔(Urs Fischer),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부터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알렉스 카츠(Alex Katz),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를 비롯한 피카소, 앤디워홀과 같은 거장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억 소리 나는 작품들이 뉴욕이나 런던이 아닌 서울을 찾아왔다. 프리즈 최고경영자(CEO) 사이먼 폭스(Simon Fox)는 오프닝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프리즈 뉴욕은 60곳 정도의 갤러리가, 프리즈 LA에는 100여 곳이 참가하는데 110개의 갤러리가 참가한 프리즈 서울은 런던(약 300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라며 참가 규모에 있어 서울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강조한 바 있다. 공식적으로 매출액을 밝히지는 않지만 자랑스럽게 매출을 밝힌 일부 갤러리와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한 판매 총액은 최소 6,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키아프 매출의 10배이자 국내 미술 시장 연간 총 거래액 평균을 웃도는 규모의 매출을 너무나도 쉽게 뛰어넘어 버렸다.
Hauser & Wirth, Frieze Seoul 2022 (Photo by Let's Studio. Courtesy Frieze and Let's Studio)
사실 페어 자체는 다른 에디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최정상급 갤러리들이 참가하여 최고 수준의 작품을 손 쉽게 팔아버리며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전쟁터를 연출해냈다. 프리즈 마스터즈에서는 뉴욕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에콰벨라 갤러리가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피카소의 [Femme au béret rouge à pompon](1937) 작품 (4500만 달러, 약 600억원), 앤디워홀의 [Troy](1962) 작품을 선보이며 높은 콧대를 자랑했다. 엘리너 에콰벨라(Eleanor Acquavella)는 갤러리를 알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작품을 선별했다 고 하였는데, 이처럼 모든 해외 갤러리는 한국 시장에 부드러운 착지를 위해 친숙한 거장의 작품들로 열띤 몸매 과시에 바빠 보였다. 대중들에게 이미 작품성이 충분히 각인되어있는 작품들은 관객 동원과 구매력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노련한 갤러리들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Acquavella Galleries, Frieze Seoul 2022 (Photo by Lets Studio. Courtesy Lets Studio and Frieze)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속내에 한국 시장은 기대를 뛰어넘은 눈부신 구매력으로 응수했다. 서울도 이정도 레벨은 된다며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콧바람까지 내뿜는 모양새다. 한국 시장의 성패여부를 매출액에만 연연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그런데 주요 판매작은 대부분 외국 작가 작품이다. 해외 컬렉터들이 서울에 와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앞다투어 사려고 하는 풍경이 펼쳐질 때까지 앞으로 양질의 작가군 양성과 글로벌 레벨의 마케팅이 필수로 동반되어야 한다. 갈 길이 아직 한 참 남았다. 물론 메가 갤러리들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박서보, 하종현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며 우리도 한국 작가 작품을 선보인다는 다정한 새 이웃 전략을 잊지 않았다. 페어에 출품된 국내 작가 중 해외 관계자의 높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포커스 아시아’ 섹션에서 갤러리 P21이 선보인 미디어 아티스트 류성실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의 찜을 받은 작품이다. 류 작가는 조악한 그래픽과 영상으로 기성사회를 노골적으로 풍자하는데 도가 텄다.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수상한 것도 동시대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풍자해내 전 세계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던 것. 아마도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단순히 시장성 있는 작품이 아닌 동시대 우리 삶이 가지는 가치에 호소하는 작품이 더욱 많아져야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반드시 기억하자.
P21, Frieze Seoul 2022 (Photo by Lets Studio. Courtesy Lets Studio and Frieze)
Joel Mesler, Untitled (Spiritual Journey), 2022 (©Joel Mesler. Courtesy LGDR)
유명 갤러리스트 4인이 모여 설립된 뉴욕, 런던, 파리, 홍콩에 기반을 둔 LGDR 갤러리는 조엘 메슬러(Joel Mesler)의 LA코리아 타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14점 선보이며 한국 컬렉터의 마음의 문을 단번에 열어 재 꼈다. 오픈 당일 완판이었다. 단순히 페어의 서울 개최 의미를 넘어서 새로운 컬렉터 층을 확보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여보겠다는 고도의 치밀한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브렛 고비(Brett Gorvy)는 스위스 바젤과 같이 대부분의 메이저 페어의 경우 첫 날 모든 일이 성사되고 거래는 마무리 되는데 반해, 서울에서는 새로운 컬렉터들이 페어의 마지막 날까지 끊임없이 찾아오고 돌아왔다며 서울만이 가지는 지역적 특성을 언급하며 날마다 다른 작품들을 다채롭게 선보이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다. 하우저앤워스는 국내 사립미술관에 조지 콘도의[Red Portrait Composition](2022)을280만 달러(약 38억원)에 판매하며, 마크 브레드포드(180만 달러, 약 24억원), 니콜라스 파티(32만 5천 달러, 약 4억 4300만원) 판매 등 연신 대박을 외쳐댔다. 가고시안도 무라카미 다카시, 백남준, 리처드 프린스, 조나스 우드 등 10여점이 넘는 작품 판매에 -늘 그렇듯- 성공하였다. 가고시안 효과라는 신조어가 미술 시장에 자리 잡은지 오래된 지금, 그들의 눈에 비치는 서울 아트 신이 궁금해 가고시안 LA 지점 세일즈 디렉터 하모니 머피(Harmony Murphy)와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하모니는 한국 컬렉터에게 어떠한 인상을 받았는지 묻자 “한국 컬렉터들은 접근 방식에 있어서 매우 사려 깊고 철저하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선보이는 작가에 대하여 생각보다 길고 자세한 대화를 나눴는데, 수집경력이 오래된 노련한 컬렉터들 조차도 끊임없이 작가들에 대해 배우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였다. 오로지 판매와 이익이 목적인 장터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풍경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가고시안 아시아 디렉터 닉 시무노비치(Nick Simunovic)에게도 페어 리뷰를 부탁하였는데, “뛰어난 글로벌 컬렉터들과 견주어 볼 때 한국 컬렉터들은 정보에 굉장히 능통하고 결단력이 강하다. 한국 미술계가 번성할 수 있는 기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수 십 년의 노력에 걸쳐 쌓아온 것처럼 보였고 가고시안은 이 경험의 일부가 된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매우 긍정적인 회신을 보내왔다. 한국 컬렉터들이 더욱 젊고 유창한 언어 능력을 토대로 고도의 교육을 받았다는 인상 심어주기에 성공한 모양이다. 하모니는 이어서 “페어는 대성공이었다. 장소 또한 적합하였고 편리하게 배치되었으며 이미 확고히 자리잡은 한국의 미술시장 면모를 체감할 수 있었다. 태평양 안팎에서 앵커 포인트로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길 기대한다.”며 응원의 멘트도 아끼지 않았다.
서울이 아시아 시장의 새로운 거점지로 떠오른 만큼 정상급 갤러리들의 억 소리 나는 판매 소식은 이미 국내외 미디어 가십거리로 한 가득 도배되었다. BTS의 RM, 유아인, 김우빈 등 유명 연예인이 찾아 온 VVIP 행사장, 여러 갤러리를 이동하며 전 세계 톱 갤러리스트, 미술관 관장, 큐레이터, 슈퍼 컬렉터 등이 한데 모여 뜨거운 열기를 더한 네트워킹 파티. 마치 누가 멍석이라도 깔아주길 간절히 기다렸다는 듯 서울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빛을 발했다. 프리즈는 이렇게 서울 아트신 생태계에 확실한 존재감을 심어주고 새로운 관계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글로벌 무대에서 서울에 보이는 지대한 관심이 단순히 아시아 시장 점유율 확장을 통한 이익창출에서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미술 작품에 대한 관세 면제와 단색화 운동, 높은 수준과 구매력을 자랑하는 국내 컬렉터, 그 밖의 K팝, 국제 영화제 수상 등 한국 문화 자산의 기반이 그만큼 두터워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동안 글로벌 미술시장은 뉴욕, 런던, 파리 그리고 아시아 시장(=홍콩)으로 크게 구분되어 왔다. 이번 프리즈 서울은 아시아 시장이 더 이상 하나의 시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서울 아트신이 만들어내는 신선도와 정체성. 더 이상 아시아 시장의 작은 일부로서가 아닌, 서울만의 풍미를 담은 매력적인 장소로 한 걸음 도약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 이번 프리즈 서울의 가장 값진 결과가 아닐까.